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환단고기/사상적 비판 (문단 편집) === 삼일신고를 [[대종교]]로부터 베꼈다 === 대종교의 삼일신고 봉장기에 의하면, 단군이 백두산에 내려와서 교화한 가르침을 석판에 새겼는데 부여가 보관하다 전란으로 잃었고, 이를 고구려에서 번역한 판본이 발해 [[대조영|태조]]를 거쳐 [[대흠무|문왕]]에게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에 문왕은 삼일신고 진본을 백두산 석실에 봉장하였고, 이를 19세기 말 백봉(白峯)이 10여 년의 기도 끝에 얻어서는 제자 백전(伯佺)을 시켜 1906년 나철에게 전하여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삼일신고가 어떻게 조선 중기에 편찬되었다는 태백일사에 실렸나?'''[* 심지어 이유립은 그의 저작인 대배달민족사에서 태백일사에 실린 삼일신고를 원본 삼일신고라고 하면서 계연수가 처음으로 세상에 유포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한 쪽이 다른 쪽을 베낀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대종교와 태백일사의 삼일신고를 서로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먼저 대종교의 삼일신고는 1918년부터 敕을 勅으로, 1949년부터 著를 着으로 한자를 바꾸어 쓰고 있는데 태백일사에는 1949년 이후의 대종교 판본처럼 勅과 着이 쓰이고 있다. 이는 태백일사가 적어도 1949년 6월 이후[* 이에 따라 오형기가 1949년 5월에 환단고기를 필사했다는 것도 자연히 거짓부렁이 된다.] 시점에 대종교의 삼일신고를 보고 베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양자가 장의 구분에 차이가 있는데, 내용상 천(天)을 논의하고 있음에도 천훈(天訓)이 아닌 허공장(虛空章)으로 이름한 것이나, 삼일신고 본문에서 시종 신(神)을 (⿰示⿱旬且)[* 왼쪽에 示변, 오른쪽 위는 旬, 오른쪽 아래는 且. 네모 점선은 '한자 생김꼴 지시 부호'(Ideographic Description Sequences)로, 유니코드 표준이나 특정 글꼴에 존재하지 않는 한자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한자를 조합하여 쓸 때 그 위치 관계를 나타내는 부호이다.]로 쓰는데도 일신장(一神章)이란 이름에서는 이를 사용하지 않았음은 이유립이 작위적으로 개작한 것을 시사한다. 또한 대종교의 삼일신고에서는 '有善惡(心)', '有淸濁(氣)', '有厚薄(身)'인 삼망의 단계를 거쳐서 '無善惡(性)', '無淸濁(命)', '無厚薄(精)'인 삼진의 단계로 나아간다고 하였는데, 이와 달리 태백일사의 삼일신고에서는 삼진을 '善無惡(性)', '淸無濁(命)', '厚無薄(精)'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유무를 대비하는 대구법으로 보면 전자가 더욱 원본에 가깝고,[* 게다가 이러한 사고를 [[반야심경]]에서 가져온 것으로 본다면 대종교의 것이 반야심경의 문법에 더욱 가깝다.] 삼일신고의 삼진은 性·命·精보다는 善·淸·厚라고 지칭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내용상으로도 전자가 더욱 자연스럽다.[* 이근철, 「대종교 경전으로 본 《환단고기(桓檀古記)》 진위 문제」, 106~110쪽.] 더불어 대종교의 삼일신고가 태백일사의 삼일신고보다 그 서술 구성에 있어서 훨씬 간명하고 원시적이기에 대종교의 삼일신고가 더욱 이른 시기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대종교 삼일신고||만물에 본디 삼진(三眞)이 있으니 성(性)·명(命)·정(精)이고,[br]사람이 미혹되어 삼망(三妄)이 뿌리내리니 심(心)·기(氣)·신(身)이고,[br]삼망으로부터 삼도(三途)가 만들어지니 감(感)·식(息)·촉(觸)이다.|| ||태백일사 삼일신고||삼진(三眞)이 미혹되어 삼망(三妄)이 뿌리내리고 삼망으로부터 삼도(三途)가 만들어지니[br]성(性)·명(命)·정(精), 심(心)·기(氣)·신(身), 감(感)·식(息)·촉(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